[2021봄] 뉴스레터
티벳록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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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0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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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3월 10일
티베트 수도 라싸에서는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티베트의 자유를 외치며 중국의 침략에 저항한 날입니다.
우리가 3월 1일을 3.1절로 정해 기념하는 것처럼, 전세계 흩어진 티베트인들이
매년 3월 10일을 티베트 민중봉기의 날이라 부르며 티베트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티베트의 국기를 높이 들어 올립니다.
그래서 이번 뉴스레터는 다소 묵직한 마음으로 62년 전 오늘,
티베트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1959년 3월 10일
티베트 봉기가 일어나기 전 티베트의 수도 라싸는 이미 불안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1959년 3월 1일
라싸 교외에 있는 중국군(a.k.a 인민해방군 사령부)에서 달라이 라마에게 연극 관람을 제안합니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그 제안을 미뤘지만, 결국은 3월 10일에 연극을 관람하기로 합의합니다.
1959년 3월 9일
연극 관람 하루 전 중국군은 두 가지를 강하게 요구합니다.
첫째, 달라이 라마가 연극 관람을 할 때 무장 경비대를 동행시키지 말 것
둘째, 포탈라 궁에서 중국군 주둔지로 이동할 때 어떤 공식적인 의식도 하지 말 것
이 요구가 라싸에 있는 티베트 사람들에게도 퍼지게 되자,
티베트인들은 중국군이 달라이 라마를 납치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됩니다.
1959년 3월 10일
중국군이 달라이 라마를 포탈라 궁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는 것을 무려 약 30만명의 티베트인이
필사적으로 막아냅니다.
1959년 3월 12일
라싸에 모인 이들은 티베트 독립군을 결성하여 티베트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라싸의 큰 길에는 바리케이트가 만들어지고 티베트독립군과 중국군은 충돌에 대비해 각각 라싸 내외에
거점을 요새화하기 시작합니다.
1959년 3월 15일


티베트 독립군의 상황이 점점 악화되자 결국 달라이 라마의 피난 준비가 시작됩니다.
1959년 3월 17일
달라이 라마의 궁전에 중국군이 실탄을 발사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더이상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고,
이 사건은 달라이 라마가 차후 인도 망명 길에 오르고 티베트 망명 정부 수립의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1959년 3월 민중봉기 이후
라싸의 주요 사원과 절은 중국군의 폭격에 의해 심한 손상을 입었고 약탈, 파괴되었습니다.
이후 라싸에 남은 달라이 라마 14세의 무장경비원과 무기를 숨기고 있었던 티베트인들은
무장 해제가 되어 공개처형 되었습니다.
티베트 망명 정부에 의하면 1959년 봉기 때 티베트인 약 86,000명이 중국군에 의해
사망하였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62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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