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연재에세이]카일라스로 가는 길 ⑥-달라이라마의 여름궁전
karuna
조회수 2,958
2006.12.14 04:23

2006년 12월 13일(수) 오후 11:35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정치 종교를 관장하는 법왕으로서 세계에 유래가 없는 독특한 방법으로 전승된다. 그것은 끝없이 환생을 거듭한다는 티베트 불교의 원리로부터 나온 것이다. 지금의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제13대 달라이 라마였던 ‘툽텐 가쵸’가 열반했다가 환생했다고 티베트 사람들은 믿는다. ‘툽텐 가쵸’는 ‘스스로 우리를 지킬 힘을 기르지 않으면 우리의 정신과 문화는 완전히 파괴당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1933년 머리를 라사의 북동쪽으로 돌려 자신이 환생할 곳을 암시한 뒤에 열반했다고 알려져 있다.
제 14대 현재의 달라이 라마는 ‘툽텐 가쵸’의 예시대로 라사의 북동쪽, 중국과 인접한 암도 지방에서 태어난다. 암도는 ‘말들의 땅’이라는 뜻이다. 1935년 7월, 암도 지방의 작은 마을 탁체르에 천둥과 번개가 치고 곧 영롱한 무지개가 솟아났는데, 이는 바로 지금의 달라이 라마 ‘텐진 가쵸’의 탄생을 알리는 신의 계시였다고 한다.
달라이는 ‘큰 바다’라는 뜻이다. 라마가 ‘스승’이라는 말이니까 달라이 라마는 ‘큰 바다와 같은 높은 덕을 지닌 스승’이라는 말이 된다. 달라이 라마는 살아있는 부처로서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다. 암도 지방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지금의 달라이 라마는 불과 만 세 살도 되기 전에 관리복장으로 변장하고 찾아온 포탈라의 고승들로부터 13대 달라이 라마의 현신인 걸 인정받고 포탈라궁으로 들어왔다가 열여섯 살 되던 해 서둘러 제14대 달라이 라마로 옹립된다. 중국이 티베트를 무력으로 점령한 후 1년 뒤의 일이다.
“삶의 목표는 행복에 있다. 종교를 믿든 안 믿든, 또 어떤 종교를 믿든, 우리 모두는 언제나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삶은 근본적으로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행복은 각자의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이 나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달라이 라마는 그의 저서 ‘행복론’에서 이렇게 말했지만, 망명정부를 꾸리고 있는 그 자신이 행복한 인생을 살아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59년, 라사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났을 때, 그는 포탈라궁과 달리 햇빛이 잘 들고 꽃들이 늘 만발해 있는 여름궁전 ‘노불링카’에 기거하고 있었다고 한다. 중국정부가 그를 납치해갈 거라는 소문 때문에 수많은 티베트 민중들이 그를 지키려고 노불링카를 맨몸으로 에워쌌고, 그 과정에서 수천의 티베트 사원이 파괴됐으며 12만명 이상의 티베트 민중이 학살됐기 때문이다. 그는 그해 소수의 심복들과 함께 티베트 군인으로 변장하고 만년빙하가 쌓인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티베트를 탈출한 뒤 오늘날까지 포탈라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비운의 군주로 살아가고 있다.
노불링카가 건축이 되기 시작한 건 18세기. ‘보석궁전’이라고도 불리는 노불링카는 비운의 역사를 다 잊은 듯, 오늘날은 중국 관광객들에 의해 하루 종일 소란스럽다. 지금의 달라이 라마는 물론이고 역대 달라이 라마들은 음침한 포탈라궁보다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정원 때문에 훨씬 생기발랄해 보이는 여름궁전 노불링카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지금의 달라이 라마가 건축하고 또 머물렀던 건물 ‘탁텐 미규 포트랑’은 아름다운 인공호수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신으로 가는 길을 한 번도 물어보지 않은 사회주의 체제로부터 잠시 떠나온 중국 관광객들이 떼지어 몰려다니는 건물 앞은 수많은 여름꽃 때문에 화사하기 이를 데 없다.
달라이 라마가 사용하던 침실과 명상실은 물론 그가 사용하던 생활용품들도 그대로 보관 전시되어 있다. 달라이 라마가 쓰던 침대에 카메라를 들이대자 관리인이 카메라 렌즈를 거칠게 손으로 가린다. 달라이 라마가 즐겨 들었다는 필립스사 라디오도 보인다.
“문화적 대학살이다.”
찡장열차의 개통을 두고 달라이 라마가 한 말이다. 중국의 대도시로부터 달려온 열차가 이제 포탈라궁 바로 코앞까지 달려와 수많은 날마다 관광객들을 부려놓고 있다. 관광객들은 서슴없이 ‘티베트는 원래부터 중국 땅’이라고 말한다. 이 건물의 어느 방에서 은밀히 티베트 군인의 복장으로 변복하고 있는 젊은 달라이 라마의 모습이 자꾸 어른거린다. 노불링카를 탈출할 때 달라이 라마는 불과 이십대 중반. 훤칠하고 눈빛이 남달리 맑았던 젊은 그는 그 순간 무엇을 생각했을까. 살아생전, 대대로 그가 주인이었고 또한 머물렀던 포탈라궁으로, 혹은 노불링카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고 상상했었을까.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원도 필요 없다. 복잡한 철학도 필요 없다. 우리 자신의 머리, 우리 자신의 가슴이 바로 우리의 사원이다. 나의 철학은 바로 따뜻함이다.”
티베트 불교에서 소중한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관조하는 자세이다. ‘내면의 겁쟁이가 지배하는 삶’에서 빠져나오고 ‘쾌락에 넋을 잃은 우리’에게서 자유로워진다면 사람은 용기로써 힘을 얻고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항상 행복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자유와 수많은 기회가 있다고 티베트 사람들은 믿는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와 기회는 심지어 죽음까지도 뛰어넘는다. 필요한 것은 자기혁신이다. 고통에 찬 자기혁신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면 언제든지 확실히, 고요하고 기쁜 가능성의 바다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 달라이 라마가 변복을 하고 히말라야 동토를 넘을 때, 왜 큰 바다의 스승인 그가 티베트의 가능성을 보지 못했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이상보다 가깝다. 이제 철로까지 개설되어 수많은 한족들과 한족들의 힘센 자본이 물밀듯 밀려들어 오고 있는 라사에서 달라이 라마의 높고 따듯한 이상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현실론으로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 ‘완전한 자치’를 바란다고 당신의 ‘따뜻한 가슴’을 내보이고 있지만 중국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티베트의 중국화를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다. 나는 색깔이 바래서 마치 먼지가 뿌옇게 앉은 듯한 달라이 라마의 침대 앞에서 오래 서성거린다. 더 무서운 것은 정치권력이 아니라 세계화로 치닫고 있는 자본이다. 세계적인 장사꾼 중국인 관광인파는 아무도 그 낡은 침대에 주목하지 않는다. 종교적으로 달라이 라마의 세계에선 흥망성쇠가 없을 터이지만, 역사는 분명히 흥망성쇠의 사이클이 있다.
달라이 라마는 어쩌면 생전에 그의 집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지금은 그가 있지만, 노벨평화상을 받음으로써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로 우뚝한 달라이 라마의 사후에는 무엇이 있어 티베트를 지켜줄 것인가. 달라이 라마의 색바랜 침대는, 아무래도 왁자한 자본의 물결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인다. 내가 눈높이가 낮아서 정견(正見), 바로 보지 못해 그러한가.
소설가
-건강한 웃음 푸른 희망, 스포츠월드(www.sportsworldi.com)-
ⓒ 스포츠월드&Segy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세계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