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bet & Dharamsala
티베트와 다람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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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가 티베트를 무너뜨린다

karuna           조회수 2,363
2007.04.24 16:50


 
[주간조선] 2007년 04월 19일(목) 오후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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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진 갸초(Tenzin Gyatso).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본명이다. 달라이는 몽골어로 ‘큰 바다’, 라마는 티베트어로 ‘스승’이란 뜻이다. ‘큰 바다처럼 넓고 깊은 지혜와 덕을 지닌 스승’이란 의미이다.


1959년 3월 31일,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농부로 위장한 채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2600㎞의 대장정 끝에 인도로 망명했다. 당시 중국은 저항운동을 벌이던 티베트 주민을 굴복시키기 위해 무자비한 군사작전을 벌였고, 달라이 라마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자 수도 라싸(拉薩)에 있는 그의 거처인 노르불링카궁을 포격하기까지 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티베트를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티베트 주민은 1962년까지 끊임없이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수만 명이 중국 인민해방군의 총칼에 희생됐으며 10만여명이 고향을 떠나 인도로 피신했다.


중국은 1965년 티베트를 시짱(西藏)자치구라는 이름으로 부르면서 명목상의 자치권을 부여했지만 이듬해 문화혁명을 시작하면서 사원 6000여곳을 파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현재 티베트에는 사원이 45개만 남아 있고 50만명이던 승려는 1100여명으로 줄었다. 지금도 티베트에서 승려가 되려면 당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사회주의에 대한 교육을 이수해야만 한다.

티베트는 역대 중국 왕조들의 영향력 아래 있다가 청조가 멸망하고 대륙이 혼란한 틈을 타 1913년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대륙을 차지한 중국 공산당 정부는 1949년 ‘본토를 하나의 정부가 통치한다’는 구호 아래 티베트 등 옛 중국 영토를 찾겠다고 발표하고, 이듬해 인민해방군 4만명을 동원해 티베트를 강제 점령했다.


달라이 라마의 망명 이후 5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중국과 티베트의 이 같은 관계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달라이 라마는 그 동안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중국으로부터 티베트를 독립시키겠다는 운동을 펴왔지만 중국은 갈수록 티베트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지난해 7월 1일 칭하이(靑海)성 시닝(西寧)에서 라싸까지 1142㎞의 칭짱(靑藏)철도를 개통한 이후, 티베트는 급속하게 중국에 동화되고 있다. 칭짱철도가 지나는 이 지역은 평균 해발고도가 4천500m이며, 가장 높은 곳은 해발고도가 5072m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놓인 철도라고 해서 톈루(天路ㆍ하늘 길)로도 불리는 칭짱철도의 개통은 티베트 주민에겐 중국의 ‘제2의 침략’이나 마찬가지이다.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의 마지막 보루는 바로 하늘이 준 선물인 자연(自然)이었다. 티베트는 천혜의 요새나 마찬가지이다.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티베트로 가려면 험준한 산들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계곡, 만년설과 빙하, 황량한 사막 지대 등을 거쳐야만 한다. 고원의 남쪽에 있는 히말라야산맥은 길이 2400㎞, 평균 해발고도 6000m가 넘고, 7000m급 봉우리도 40여개나 된다. 또 쿤룬(崑崙)산맥, 탕구라(唐古拉)산맥, 강디쓰(岡底斯)산맥 등이 포진하고 있다. 기후도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겨울철이면 영하 20여도의 매서운 추위가 강풍과 함께 몰려온다. 특히 고도가 너무 높아 산소 부족으로 고산병에 걸리기 쉽다. 중국이 칭짱철도를 완공하는 데 연 인원 10만여명을 동원하고도 2001년부터 5년이나 걸린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티베트 주민에게는 마지막 보루가 무너진 셈이다. 티베트 주민이 그 동안 강력한 독립 의지를 지켜온 것은 이 같은 자연환경 덕분에 중국과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티베트의 독립 의지를 뿌리째 뽑겠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칭짱철도를 건설했다. ‘티베트의 한화(漢化)’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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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칭짱철도는 티베트를 영구 지배하려는 중국의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칭짱철도 개통 이후 티베트의 변화는 가히 천지개벽 수준이다. 중국 대륙에 살고 있던 한족(漢族)이 물밀듯이 몰려들고 있다.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는 시짱자치구의 전체 인구 270만명 중 92%는 장족(藏族)이라고 설명하지만 라싸 주민 27만여명 중 절반은 한족이다. 심지어 한족의 대량 유입으로 도시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 달라이 라마의 겨울 궁전이었던 포탈라(布達拉)궁을 중심으로 동쪽은 장족의 거리, 서쪽은 한족의 거리로 구분된다. 서쪽에는 식당과 식료품점, 기념품점, 유흥업소 등이 들어서는 등 이미 중국 지방 도시의 시가지로 변했다. 동쪽도 갈수록 중국화하고 있다. 칭짱철도가 개통된 이후 지난해 말까지 연 인원 190만명이 티베트를 찾았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50%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앞으로 5년 후에는 그 수가 연간 530만명으로 늘 것으로 예상된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포탈라궁의 경우, 전에는 하루 평균 관광객이 1400여명이었지만 현재는 6000여명을 넘어섰다. 때문에 피해를 우려한 포탈라궁은 하루 입장객 수를 제한하고 있는 실정이다. 달라이 라마는 지난 1월 31일 인도 뭄바이에서 가진 종교집회에서 “칭짱철도의 연결은 티베트에 현실적인 위험”이라며 “엄청난 수의 거지와 장애인이 몰려들고 있으며 중국 대륙에서 어려움에 직면한 무직자들도 라싸로 오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또 “중국은 교육받지 않은 시골 소녀들을 라싸에서 매춘부가 되도록 보내고 있어 에이즈 위험도 증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티베트 주민의 생활도 달라졌다. 농사일과 목축을 하던 주민 중 상당수는 건설현장에서 ‘다궁(打工ㆍ아르바이트)’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또 과거에는 가족 중 한 사람 꼴로 승려가 있었으나 지금은 승려가 되려는 사람이 거의 없을 지경이다. 주민은 ‘독립’이란 단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 중국 정부의 철저한 감시와 통제로 자칫하면 감옥살이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정체성마저 상실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학교는 물론 공공장소에서 티베트어를 쓰는 것을 금지했다. 대학생이 종교 활동에 참여하면 퇴학 당한다. 특히 중국의 서남공정(西南工程)으로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유산은 ‘중국산’이 되고 말았다. 중국은 1986년부터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지시로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를 자국으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서남공정은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중국장학연구중심(中國藏學硏究中心)이 주도했다.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 동북공정을 추진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티베트 연구의 핵심은 한장동원론(漢藏同源論)으로 요약된다. 중국인인 한족과 티베트의 장족(藏族)은 문화와


중국은 그 동안 티베트가 자국의 일부분이었다고 주장해 왔다. 7세기 초 국가를 형성한 이후 원(元)과 청(淸)대를 제외하고는 독립적인 국가를 유지해온 티베트의 역사를 말끔히 지운 셈이다. 당(唐)대 장안(長安)까지 세력을 넓히면서 중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던 8세기의 티베트 역사도 통째로 빠졌다. 서안공정의 압권은 1999년 라싸에 세워진 시짱 박물관이다. 예를 들어 중국 당국은 이곳에 전시된 티베트 특산품 옥(玉)에 대해 “중화민족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오랜 기간 옥을 숭상해 왔다. 원ㆍ명ㆍ청조 시기 티베트는 많은 양의 옥을 조공으로 바쳤다”고 기술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티베트의 역사를 ‘구석기에서 7세기까지’와 ‘7세기 이후 현대까지’로 양분하고, 이를 ‘나뉠 수 없는 역사(不可分割的歷史)’라고 적고 있다.


중국이 티베트를 자국의 영토로 만들기 위해 이처럼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에는 한족 이외에 55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전체 인구의 8.4%인 소수민족은 전 국토의 63.7%를 점유하고 있다. 인구에 비해 국토가 좁은 중국이 이들 소수민족의 독립 요구를 수용하고 영토를 내어 줄 경우, 중국은 분열될 수밖에 없다. 티베트 한 곳만 해도 중국 영토의 25%를 차지한다.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 문제에 극도로 민감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은 티베트의 독립을 허용할 경우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 네이멍구(內蒙古), 만주로 이어지는 ‘독립 도미노’가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 정부는 그 동안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억눌러왔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도 1989년 시짱자치구 당서기로 있을 때 독립운동이 발생하자 이를 무력으로 진압한 일이 있다. 당시 후진타오는 덩샤오핑으로부터 티베트의 독립 요구 시위를 신속하게 진압한 공을 인정 받아 정치적 출세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중국은 최근 들어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에 대한 고삐를 더욱 쥐고 있다. 이와 관련, 중국 국무원은 “민족의 단결과 사회 안정, 국가 안전을 수호하기 위해 분열주의를 단호하게 근절해야 한다”면서 ‘소수민족사업 11차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2007년 3월 39일) 이 계획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앞으로 소수민족 문제로 일어날 수 있는 돌발사건에 대비, 감시ㆍ감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이 같은 소수민족 계획을 밝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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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티베트의 독립을 허용할 수 없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인도와 네팔, 미얀마 등 서남아 국가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로도 진출할 수 있다. 지리적 특성으로 볼 때도 티베트는 핵과 미사일 등 전략적 무기 배치와 개발에 가장 이상적인 곳이다.

티베트는 또한 풍부한 지하자원도 보유하고 있다. 중국 지질조사국이 최근 발표한 자료(2007년 2월 12일자 신화통신)에 따르면 티베트에 철광석ㆍ구리ㆍ납ㆍ아연ㆍ유혈암(油頁巖) 등 막대한 지하자원이 매장된 것으로 조사됐다. 철광석 10억t, 구리 3000만~4000만t, 납과 아연 4000만t 등으로 철광석은 1년, 구리는 8.2~10.9년, 납과 아연은 8.3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구리의 경우, 중국 전체 생산량의 3분의 1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은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석유 함유 비율이 5~6% 수준인 유혈암도 대량 발견됐는데, 중국이 시험개발 중인 지린(吉林)성 유혈암 광산보다 훨씬 큰 것으로 분석됐다. 장훙타오(張洪濤) 지질국 부국장은 “시짱은 지금까지 중국에서 유일한 조사 공백지였다”면서 “중국이 매우 부족했던 지하자원이 대량 발견된 만큼 앞으로 시짱이 중국 전략자원의 중요 기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앞으로 대대적인 티베트 지역개발사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오는 2010년까지 1097억위안(약 13조7000억원)을 들여 아리(阿里)공항 건설과 칭짱국도 재정비, 9년제 의무교육 실시, 생활식수 공급 체계 구축 등 180개 사업을 추진하기로 공식 발표했다. 시짱자치구의 장칭리(張慶黎) 당서기는 “공산당 정치국이나 국무원 상무회의가 한 지역에 대해 직접 발전계획을 수립한 것은 중국 역사상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로비 바넷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도 “중국 정부는 최근 티베트 지역의 급속한 개발을 결정했다”면서 “외국 자본까지 끌어들여 5성급 호텔 건설 계획을 세운 것은 중국이 티베트 개발을 구체화하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특히 칭짱철도를 라싸에서 서쪽으로 330㎞ 떨어진 시가체(중국명 르커저ㆍ日喀則)까지 연장할 계획이다. 티베트 제2의 도시인 시가체는 해발 4000m의 오지에 위치해 관광도시화한 라싸보다 티베트의 전통문화를 더 잘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해발 4300m에 건설되는 아리 공항이 완공되면 관광객 수요는 폭증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칭짱철도 개통 후 라싸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한화(漢化)의 물결이 티베트 전역을 휩쓸 것이 틀림없다.


중국이 이처럼 티베트 한화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자, 달라이 라마는 생전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 때문인지 올해 72세인 달라이 라마의 입에서도 더 이상 독립이란 말이 나오지 않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지난 4월 8일 인도의 뉴스 전문 민영 TV인 CNN-IBN과의 인터뷰에서 “과거가 어쨌든 티베트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라는 중국의 주장을 완전히 수락한다”고 말했다. 그는 “티베트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이 철수하는 것은 나 개인의 꿈에 불과할 뿐 베이징(北京)과의 협상 전제조건이 아니다”라며 “나는 결코 독립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내가 더 많은 자치권일 뿐 절대로 독립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행정 분야에서는 티베트인이 진정한 자치를 해야 한다”며 “티베트 문제는 내가 입적(入寂)하더라도 계속될 것이며 티베트인이 하늘 아래 존재하는 한 남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실적으로 힘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는 달라이 라마는 중국 정부에 ‘고도(高度)의 자치’를 요구하는 방침으로 선회했다. 행정권만 주면 독립국가로서의 외교와 국방은 포기하겠다는 제의이다.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막강한 국력을 감안할 때 의미 있는 정도의 자치만 보장된다면 중국의 일부로 남아 있는 것이 티베트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의미 있는 수준의 자치는 티베트 고유 문화를 지킬 수 있도록 보장 받는 것을 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의 제의를 거부한 채 느긋한 표정이다. 중국 정부는 칭짱철도 개통 이후 티베트 지배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가 사망할 경우, 티베트 독립의 구심점이 사라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티베트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후진타오 주석은 달라이 라마의 ‘완전한 항복’을 바라고 있다. 반면 달라이 라마의 카리스마에 의존하고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는 오히려 그의 사후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중국 정부의 비타협적 태도에 분개한 젊은 망명 승려들이나 티베트청년회 등 급진 단체들은 독립을 쟁취하려면 현재의 비폭력 노선을 버리고 무장투쟁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티베트의 미래는 앞으로 수년이 전환점이 될 것이다. ‘신의 땅’이란 뜻인 라싸로의 귀향을 원하는 달라이 라마의 꿈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티베트 최근 역사


 1913년 01월  13대 달라이 라마 청나라 군대 몰아내고 독립 선언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1950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 티베트 공격
 1950년 11월  중국, 티베트 지역 절반을 칭하이 및 쓰촨 성 등으로 분할
 1951년 05월  14대 달라이 라마의 강요로 중국 정부와 17개 협약 조인
 1959년 03월   민중봉기 실패 뒤 달라이 라마 인도로 망명
 1965년 09월   중국, 티베트족 전체 거주지역 중 절반만 자치구로 출범
 1989년 10월   티베트 독립 대규모 시위
 1995년 05월  14대 달라이 라마가 지목한 11대 판첸 라마 납치 구금
 2006년 07월   칭짱철도 개통으로 티베트에 외지인 급증, 한화(漢化) 가속



/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truth21c@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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