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맙다! 몽골족·만주족"
karuna
조회수 2,505
2008.04.07 15:32
[특파원 리포트]
[ 2008-04-07 10:13:54 ]
베이징=CBS 김주명 특파원 jmkim@cbs.co.kr

최근 티베트 라싸지역의 폭동 이후 중국의 지배에 반대하는 티베트의 움직임과 국제사회의 압력이 가중되면서 중국은 티베트가 "원 왕조 이래 줄곧 중국의 영토에 속해 있었다"며 티베트 지배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이 티베트를 지배하게 된 것은 모두 한족 정권이 아닌 이민족 정권의 지배하에서였다.
7세기 초 현재의 티베트 지역에 손챈 감포왕이 등장하면서 토번(吐蕃)이라는 통일국가가 형성됐다. 당나라는 변방의 위협을 줄이고자 정략결혼과 조공관계를 통해 토번지역을 관리했다.
토번지역이 중국의 영토로 복속된 것은 몽골족 정권인 원대에 이르러서였다. 1253년 원의 헌종이 군대를 파견해 티베트 전역을 장악하고 중국 지배체제를 확립한 것이다.
한족 정권인 명대에 이르러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지배체제는 다시 약화됐지만 이어 등장한 만주족 정권인 청대에 이르러 또다시 티베트에 대한 지배체제가 강화됐다.
청은 티베트 뿐 아니라 투르키스탄으로 불리는 신장위구르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이 몽골족과 만주족의 지배체제 아래에서 중국은 지금과 같은 국토를 확장할 수 있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이 멸망한 뒤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지배도 약화됐다. 1912년 티베트 인들은 티베트 지역에 주둔하던 청의 군대를 몰아내고 독립체제를 갖췄다. 이후 1950년까지 티베트는 독립을 선언한 채 중국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1949년 중국공산당이 내전에서 국민당을 물리치고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한 뒤 인민해방군은 티베트로 향했다. 1949년 말부터 1950년 말까지 중국 인민해방군과 티베트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으나, 티베트 군대는 수많은 전투를 치른 인민해방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티베트인들은 국제적인 중재노력에 한가닥 희망을 걸었지만 국제적인 관심은 때마침 발생한 한국전쟁에 집중됐고 티베트인들의 독립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중국이 티베트에 대한 영유권을 강조할 수 있는 역사적 연원은 이민족의 중국 지배와 한국전쟁이 커다란 역할을 했으니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이 몇년 전 논란이 됐던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가 중국 변방의 지방정권이었다고 강조했던 이유도 간도와 만주의 영유권에 대비하려는 이유로 해석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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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부활 20주년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www.nocut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근 티베트 라싸지역의 폭동 이후 중국의 지배에 반대하는 티베트의 움직임과 국제사회의 압력이 가중되면서 중국은 티베트가 "원 왕조 이래 줄곧 중국의 영토에 속해 있었다"며 티베트 지배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이 티베트를 지배하게 된 것은 모두 한족 정권이 아닌 이민족 정권의 지배하에서였다.
7세기 초 현재의 티베트 지역에 손챈 감포왕이 등장하면서 토번(吐蕃)이라는 통일국가가 형성됐다. 당나라는 변방의 위협을 줄이고자 정략결혼과 조공관계를 통해 토번지역을 관리했다.
토번지역이 중국의 영토로 복속된 것은 몽골족 정권인 원대에 이르러서였다. 1253년 원의 헌종이 군대를 파견해 티베트 전역을 장악하고 중국 지배체제를 확립한 것이다.
한족 정권인 명대에 이르러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지배체제는 다시 약화됐지만 이어 등장한 만주족 정권인 청대에 이르러 또다시 티베트에 대한 지배체제가 강화됐다.
청은 티베트 뿐 아니라 투르키스탄으로 불리는 신장위구르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이 몽골족과 만주족의 지배체제 아래에서 중국은 지금과 같은 국토를 확장할 수 있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이 멸망한 뒤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지배도 약화됐다. 1912년 티베트 인들은 티베트 지역에 주둔하던 청의 군대를 몰아내고 독립체제를 갖췄다. 이후 1950년까지 티베트는 독립을 선언한 채 중국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1949년 중국공산당이 내전에서 국민당을 물리치고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한 뒤 인민해방군은 티베트로 향했다. 1949년 말부터 1950년 말까지 중국 인민해방군과 티베트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으나, 티베트 군대는 수많은 전투를 치른 인민해방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티베트인들은 국제적인 중재노력에 한가닥 희망을 걸었지만 국제적인 관심은 때마침 발생한 한국전쟁에 집중됐고 티베트인들의 독립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중국이 티베트에 대한 영유권을 강조할 수 있는 역사적 연원은 이민족의 중국 지배와 한국전쟁이 커다란 역할을 했으니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이 몇년 전 논란이 됐던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가 중국 변방의 지방정권이었다고 강조했던 이유도 간도와 만주의 영유권에 대비하려는 이유로 해석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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