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의 오바마’ 상가이, 망명정부의 한 풀어줄까
ㆍ달라이 라마 정치 은퇴 후 세대교체 바람

티베트 망명정부의 새 총리로 선출된 롭상 상가이가 지난 3월20일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에 도착한 뒤 티베트인임을 입증하는 신분증을 들고 웃고 있다. 다람살라 | AP연합뉴스
인도북서부 히말라야 산맥 고원에 위치한 다람살라는 티베트인들의 ‘작은 왕국’이다. 그곳에서는 티베트인 6000여명이 망명정부의 지도 하에 살아가고 있다. 티베트 망명정부 수반 달라이 라마 14세(76)는 종교와 정치를 아우른 티베트 최고의 지도자이다. 망명정부 산하에는 의원 40여명으로 구성된 의회와 7개 부처의 내각, 사법부 등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결정은 달라이 라마와 논의해 이뤄진다. 망명정부의 고위직은 대부분 티베트불교 지도자들로 채워져 있다. 2001년부터 10년째 ‘칼론 트리파’로 불리는 내각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삼동 린포체(72) 역시 티베트 승려이다. 정부라기보다는 종교 원로원에 가까운 이곳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바람의 주인공은 망명정부의 차기 총리 롭상 상가이(43)다.
망명 2세·운동권·하버드 박사 출신
◇ ‘티베트인의 오바마’ 롭상 상가이 = 지난달 27일 티베트 망명정부는 3월20일 실시된 티베트선거에서 롭상 상가이가 새 총리로 선출됐다고 밝혔다. 상가이는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티베트인 유권자 8만3400명 가운데 4만9000여명이 참여한 선거에서 55%의 득표율을 거두며 다른 총리 후보자를 가볍게 따돌렸다. 상가이는 신세대 티베트인이다. 1968년 인도 동북부의 차 재배지인 다르질링에서 태어나 명문 델리대를 졸업한 상가이는 96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에 선발돼 미 하버드대학에서 석·박사 코스를 마쳤다. 현재는 하버드 법대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엘리트 코스를 거친 상가이에게도 티베트인의 한이 배어 있다. 승려 출신인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달라이 라마가 조국을 탈출하던 59년 인도로 망명했다. ‘티베트 난민’ 상가이가 조국의 현실에 눈을 뜬 것은 자연스러운 일. 상가이는 델리대학 시절 티베트청년대회의 델리분회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최연소 중앙집행위원도 맡았다. 하버드대 재직 중에는 달라이 라마와 중국 학자들간의 회의를 주선하는 등 달라이 라마의 해외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화려한 학력을 지닌 상가이는 선거기간 티베트의 미래와 전망에 대해 자신있게 설파하면서 ‘티베트인의 오바마’라는 별명을 얻었다. 상가이는 오는 8월 임기가 끝나는 린포체의 뒤를 이어 티베트 망명정부 총리에 오른다.

미국의 영향력도 높아질 전망
◇ 막오른 티베트 망명정부의 세대교체 = 상가이의 총리 당선은 티베트 망명정부 지도력에 변화를 몰고올 사건이다. 상가이는 지난 3월 달라이 라마가 정치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며 정계은퇴를 공식화하면서 망명정부의 차기 지도자로 부상했다. 또 40대 신세대가 총리에 선출되면서 티베트 망명정부의 세대교체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승려가 아닌 민간인이 처음으로 최고 지도부에 오르면서 티베트의 정교일치 전통도 종지부를 찍게 됐다.
총리에 선출된 상가이는 젊은 티베트인에 대한 교육과 보건 정책, 망명사회의 단결 및 화해를 정치 목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임 총리와 달리 망명정부를 이끌 책무를 부여받은 그에게는 중국 정부와의 협상, 국제사회에서의 티베트 외교 등 떠맡아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세계 어느 나라로부터도 정부로서 인정받지 못한 티베트 망명정부가 60년 넘게 존속해온 것은 숫제 달라이 라마의 지도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상가이가 당분간은 달라이 라마의 그늘 아래에서 정치를 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또 미국에서 15년간 머물며 관리, 학자들과 친분이 두터워 미국의 영향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가 정치 은퇴를 선언한 데다 티베트인들의 새 정치에 대한 열망이 큰 만큼 상가이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도 만만치 않다. 린포체는 “상가이의 당선은 하나의 도전이자 새로운 시도이며, 우리가 완전히 새로워질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달 28일 “젊은 상가이가 티베트 망명정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변혁을 가져올 것”이라고 보도했다.중국과 대화채널 마련 등 숙제
◇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 최대 과제 = 티베트 난민 2세대인 상가이는 티베트에 가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티베트 문제에는 급진적이었다. 티베트청년대회 지도자로 활동할 때에는 티베트가 중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미국 유학 중인 2008년 티베트 유혈시위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는 미 상원에 출석해 중국 정부를 비난했다.
그러나 망명정부 총리 선거를 거치며 상가이의 티베트 정책노선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가이는 총리에 선출된 지난달 27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달라이 라마가 대표하는 ‘중도노선’은 중국 안에서 또는 중국 헌법의 틀 안에서 진정한 자치를 하는 것”이라며 티베트 독립보다는 진정한 자치를 주장하는 달라이 라마의 노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티베트 독립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는 “하나의 가설일 뿐이며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영국 가디언은 학생 시절 티베트 독립노선을 지지하던 상가이가 달라이 라마가 제시한 ‘중간 노선’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가이의 전력에 비춰볼 때 총리 취임 이후 그가 다시 강경파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달라이 라마의 ‘자치 노선’을 따르면서도 다른 색깔의 정책을 내보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평론가의 말을 빌려 상가이가 달라이 라마의 온건 정책을 뛰어넘어 문화 보호나 언어 보존과 같은 ‘현실적으로 의미 있는 자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상가이의 과제는 중국 정부와 대화 채널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로서 중국이 망명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티베트 망명정부의 새 지도자 선출에 대한 논평을 요구받고 “망명정부는 티베트 독립을 추구하는 불법조직으로 세계 어느 나라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대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중국은 2002년부터 2008년 11월까지 달라이 라마 사무실을 통해 망명 정부와 8차례 회담을 한 경험이 있다. 중국 내 티베트인들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달라이 라마 측과의 접촉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는 조만간 망명정부 의회의 승인 절차를 거친 뒤 정계를 떠난다. 중국은 달라이 라마가 정계에서 완전히 손을 뗄 경우 상가이를 대화 파트너로 맞이할 수도 있다. ‘티베트인의 오바마’는 그 때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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