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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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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빼마 작성일04-12-05 18:47 조회4,4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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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한 바구니와 가장 좋은 우유 한 통씩을 들고
마을 할머니들이 우리를 반긴다.
하얀색 스카프를 목에 걸어주며
수고했다 잘 살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외국에서 돌아온 아들과 새 며느리를
축하하러 온 마을 사람들에게 시어머니는 버터티를 내온다.

한국에 날씨는 어떻냐, 음식은 맛있냐, 소소한 이야기부터
우리 집 가족 이야기까지 작은 시골 마을 할머니들의 질문에
제임스는 열심히도 대답한다. 옆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시는
시아버지는 내심 아들이 대견스러운 눈치다.
외국에 다녀온 아들,딸을 둔 집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광경이다.

원래는 돌아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빈손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
외국에서 가져온 작은 선물이라도 들려줘야 한다고 했다.
옆집 딸이 미국에서 왔을 때는 비누를 받았다고 했다.
우리는 미쳐 준비하지 못해 급히 버터와 세제를 사서
다음날 돌려야 했다.

한국에서 제임스가 동네 사람들 선물을 사야 한다고 했을 때
나는 깜짝 놀라 너희 집 식구에 사촌형네 선물까지 모잘라
동네 사람들 것까지 챙겨야 하냐며 정색을 했었는데,
그런 내 마음이 너무 각박했던 것 같아 이제 와서야
제임스한테 부끄럽다.

제임스가 말한 선물은 큰 것이 아니라 그저 성의에 불과한
정말 작은 것 이였는데 말이다.
때때로 제임스는 자기가 입던 정말 오래된 옷을 자신이
더 이상 입지 않을 때면 꼭 누군가를 주려고 해서 나한테
구박을 받곤 한다.

어떻게 그걸 선물로 줄 수가 있냐고 요새 누가 남이 입던
오래된 옷을 입겠냐고 괜히 낯부끄러운 짓 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럴때면 제임스는 도저히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아해
하곤 했었다. 물론 나 역시 제임스를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선물이라고 하면 왠지 값나가는 것에 폼나는 포장지에
쌓여있는 것 이여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만연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나서 자란 내게는 계란 열두 개의 소박한 마음이
모자랐던 것 같다.

자기가 입지 못하는 옷을 기꺼이 남한테 줄 수 있는 마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부끄러워 할 필요 없이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여기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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