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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동 그 가게에 오는 나의 길

티벳록빠           조회수 654
2018.01.18 19:09


사직동 그 가게에 오는 나의 길

 

                                                                                                                                                              화요 지기 유아라

 

 

12.

어릴 적 심심하면 방에 있는 지구본을 돌렸다. 돌리고 있으면 동생이 들어와 괜히, 인도는 어딨게? 뉴질랜드는? 하고 묻는다. 동생이 갑자기 티베트는? 하자, 나는 어? 어디서 들어보긴 했는데 하면서 지구본을 돌렸다.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빨간색 고딕체로 티베트 고원이라고 쓰여있었다. ! 이건 나라가 아니라 고원 이름이잖아! 하고 동생 머리에 꿀밤을 가했던, 티베트는 나의 어린 기억 한 조각을 담당하고 있다.

 

고원이면 페루 같은 곳인가? 티베트에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곧 잊었다.

 

20.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나의 최대 고민거리는 어떻게 하면 멋진 인생을 살 것인가 였다. 아니, 어떻게 하면 더 남부러운 인생을 살 것인가 였다. 하지만 멋지고 남부럽게 살기 위해 뭔가를 하고 있는데 재미도 없고 즐겁지 않았다. 힘이 들었다. 원래 멋지고 남부러운 인생은 이렇게 고독하고 힘이 드는 걸까? 내가 의지가 약해서 스스로에게 투정부리는 거라고 생각해서 나를 더 몰아붙였다.

 

대학 내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되었다. 한동안 사진에 빠져 사진전을 보러 다니는 취미가 생겼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보게 된 박노해라는 시인의 사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곳은 티베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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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사진 속 여인은 짜이를 정성스레 끓이고 있고 주변의 아이들이 둘러앉아 모두 그 여자를 바라본다. 아마 그 아이들은 아침 짜이 한 잔을 아껴 먹으며 방긋 웃을 것이다. 단지 이미지 속 흑백 칼라로 잡힌 모락모락 연기일 뿐이었지만 얼마나 따뜻하고 깊은 맛일지 느껴졌다. 짜이를 직접 마셔보고 싶었다. 인도에 가야만 먹을 수 있겠지. 언젠간 반드시 인도에 가서 저 짜이 한 잔을 마시면 저 아이들처럼 해맑게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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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아이 하나가 작은 송아지를 데리고 등교를 한다. ‘탈무드를 읽으면서 느릿느릿. 가는데 2시간, 오는데 2시간 총 4시간을 걷는다. 하지만 아이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한다. 그 네 시간 동안 탈무드를 읽으며 길 위에서 지혜를 얻는다고 말한다. 매일 아침 통학하며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지쳐 잠드는 내 모습, 1분이라도 아끼려고 잔디밭 가로질러 가는 내 모습. 나는 그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뭘 느꼈으며, 아낀 1분의 시간 동안 뭘 얻었을까.

 

뭔가 일을 해야만 내 인생이 가치가 있고 빛이 날 거라 생각했다. 나에게 일이란 남들이 알아주고 박수쳐주고 단기간에 성과가 눈에 보이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게 일을 해 본적도 없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나의 허탈함은 점점 나를 스스로 고립시켰다.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게 했고 만족하고 인정하지 못하게 했다. 분명 나는 뭔가를 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마셔본 적도 없는 한 잔의 짜이가 생각났다.

 

26.

그러는 와중에 사직동 그 가게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짜이 한 잔을 마시게 되었다.

 

한창 마음이 어지러울 때 사직동 그 가게에서 먹었던 커리와 짜이 한 잔에 내 마음이 가득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사진을 보면서 난 짜이를 언제 한번 먹을 수 있을까 막연히 생각했는데 내 앞에 놓인 짜이 한 잔을 마시며 사진 속 티베트 인들의 삶이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아침이 되면 짜이를 정성스레 끓이던 여인과 같이, 하루하루에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작물을 수확하러 나가기 전 새벽부터 산에 올라간다. 태양이 뜨기 직전, 그들은 기도를 한다. 오늘 하루도 당신에게 바친다고. 종교가 아니다. 신성한 자신의 하루에 대한 믿음이고 사랑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고 있다.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는 말이 있다. 그런 추상적이고도 형이상학적인 말이 있을까, 이건 그냥 말뿐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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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그런 사람들이 정말 있었다. 티베트에도 있고, 이곳 사직동 그 가게에도 있다. 하루하루를 정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은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당신을 이롭게 하거나 돈을 더 주거나 명예를 더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삶의 안락에서 더 멀어지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짜이를 끓이고 있다. 설탕과 짜이, 생강을 넣고 국자로 공기와 마찰을 주고 마호가니 색이 우러날 때까지 불을 조절하고 한 잔의 짜이를 만들어 낸다.

 

27.

나도 짜이를 끓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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