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가을 ] 다람살라에서 온 편지

12주년 기념일에.

                                                                                                                                 글쓴이  빼마

" 뭐 좀 도와줄까?"

12주년 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함께 일하는 지혜에게 물어봤다. 

"괜찮아요. 사진 준비도 거의 마쳤고 혼자 하면 될 것 같아요."

 뭐가 이렇게 허전하지? 12주년 기념일이 코앞에 있는데 한가하다. 그도 그럴 것이 매년 같은 듯 다른 듯, 어느 정도는 일정한 식순으로 진행되는 일이다 보니 누구 하나 허둥대는 사람이 없다. 그나마 십년 가까이 기념일을 진행해 왔던 지금은 퇴사한 전매니져이자 현학부모대표인 캘상만이 들락날락하며 걱정을 할 뿐이다. 아- 이게 매너리즘인가? 크게 바쁘지를 않으니 안도가 된다기보다 이래도 되나 걱정스러운 내 자신이 좀 우스웠다. 전형적인 일 중독자에 모습 같아서 말이다. 

 예전에는 어땠지? 떠올리다 보니 첫 해 기념일까지 생각의 꼬리가 닿았다. 함께 일하는 티벳 직원이라고는 달랑 한 두명일 때다보니 하루 종일 아기들을 돌보고 행사 준비까지 할 여력이 없었다. 다행히 내게는 천군만마와 같았던 한국 자원 활동가들이 늦은 밤에도 모여서 함께 기념일 준비를 도와준다. 기념일 하루 전날, 내일 아기들이 와서 깜짝 놀랄 표정을 생각하며 풍선도 달고,1년을 회고하는 사진도 전시하고, 선물도 준비한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일을 겨우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밤하늘에 별이 떠있다. 긴긴 장마 끝에 내일은 날씨가 좋을 거라며 좋아들한다. 출출함을 달래러 지금은 사라진 허름한 티벳 식당에서 어깨를 부딪혀가며 따뜻한 뚝빠 한 그릇을 한다. 식당에 앉아서도 또 낮에 탁아소에서 있었던 아기들 이야기로 웃고 또 웃는다. 그래봤자 대단할 것 없는 작고 작은 이야기들, 오늘 누가 자기를 알아보며 뒤에서 안아줬다든가, 장난감 한 개를 다른 아기에게 양보했다든가, 어쩌다 내뱉은 말 한 마디라든가... 아마 똑같은 이야기를 어제도 그제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우리는 마치 처음인 냥 또 놀라워하고 즐거워한다. 벌써 12년 전 이야기다.

 사실 똑같은 날을 열두 번 하다 보니 내가 한가하게 느낄 뿐이지, 록빠는 여전히 바쁘다. 그 일을 스무 명의 티벳 직원들과 학부모 대표들이 나눠서 준비를 하고 있다. 올 해는 부모님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영어와 티벳어로 감사 편지를 쓰고 부모님들 한 명 한명의 사인을 담아 큰 액자에 넣은 특별한 감사장을 전달해 온 것이다. 1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올 해는 부모님들과 지역 주민의 참여가 유독 많은 해다. 탁아소 가족뿐 만 아니라 전혀 모르는 티벳 사람들이 록빠 사무실로, 록빠 가게로 기부 물품을 놓고 가는 경우도 많고, 티벳 젊은이들의 자원 활동 참여도 많았다. 부모님들도 그 어느 해보다 적극적으로 록빠 일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날이 그날 같아 보여도 멈춘 적은 없다. 그렇게 소소한 일상이 쌓이니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매일 매일이 반짝이지는 않는다. 어떤 날은 내가 여기에서 뭐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단조롭고 지루한 일을 할 때도 있다. 더욱이 록빠는 정해진 기간에 일을 마쳐야 하는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단순한 일상을 잘 쌓아야 단단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그래야 고비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