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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주간불교] 티베트 난민 돕기 팔 걷은 잠양 부부

빼마           조회수 3,910
2005.01.30 17:07


와이드인터뷰- 티베트 난민 돕기 팔 걷은 잠양부부

󰡒한국은 진정한 티베트 󰡐록빠(친구)󰡑󰡓
티베트난민 현실 알려 독립 앞당길 터
󰡒노인공동체·탁아소 설립하는 게 꿈󰡓


대개의 불자들은 티베트라고 하면 달라이 라마·모래 만다라·탄트라 밀교·천장이라는 전통장례 풍습 등을 떠올리면서 신비로운 서기가 감도는 땅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관념일 뿐 실상이 아니다. 티베트는 이제 더 이상 국가가 아니다. 국가성립의 3요소인 국민·영토·주권 중에서 주권과 영토를 이미 중국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거주하며 살고 있는 티베트 난민이 현재 13만명에 달하고 있다. 더욱 문제가 심각한 것은 해마다 4천명의 인원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온다는 사실이다. 물론 동상에 걸려 다리가 잘리고 심지어는 설산(雪山)을 넘다가 끝내 목숨이 빼앗기는 인원도 적지 않다. 사선을 넘어서 간신히 다람살리에 도착한다해도 티베트 난민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나라 잃은 슬픔과 가난뿐이다.
이처럼 힘든 상황을 겪는 티베트 난민을 위해 팔 걷고 나선 불자부부가 있어 눈길을 끈다. 국경과 종교를 넘어서 부부의 연을 맺은 텐진 잠양(29)과 빼마(한국이름 남현주 28) 씨가 바로 그 주인공. 티베트 난민을 돕기 위한 자선공연󰡐Save Tibet Festival󰡑이 열린 이튿날인 24일 저녁 홍익대 앞의 한 카페에서 이들 부부를 만났다.
󰡒먼저 단 한 푼의 개런티도 받지 않고 일체대비심의 마음으로 이번 콘서트를 도와준 동료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작은 규모의 콘서트였던 지라 그 수익금은 많지 않았지만 티베트 난민들에게는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면 그들은 기꺼워했다. 이날 공연은 티베트 독거노인을 위한 양로원과 탁아소를 설립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어서 이들 부부의 기쁨은 더욱 컸다. 이번 콘서트가 성공적으로 막을 내리기까지 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어싿. 여행가 김남희 씨는 자신의 책 인세를 이들에게 전달했으며, 가수 이문세 씨를 비롯 성악가 등 50여명도 기금을 지원했다.
이날 콘서트에서 무대에 오른 뮤지션들은 가수 전인권 씨를 비롯해 강산에· 이상은· 불독맨션의 이한철· 어어부프로젝트의 백현진 등이다. 공연 후 티베트 영화 󰡐룽타(깃발)󰡑와 다큐멘터리 󰡐티베트에서의 탈출󰡑 등이 상영돼 티베트 난민의 상황을 알리는 좋은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록빠(티베트어로 친구라는 뜻)󰡑라는 공식 NGO단체를 결성할 계획입니다. 록빠는 앞으로 한국에서 티베트 노인 공동체 건립을 위한 사업을 펼칠 것입니다.󰡓 
이들 부부가 한국인들과의 교류를 확대한 것은 지난해 4월 인도 다람살라에 한국식당 리(티베트어로 산이라는 뜻)의 문을 열면서부터다. 잠양 부부는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해 이전부터 꿈꿔온 국토대장정을 실행하기로 결정지었다. 국토대장정은 혹한의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지난해 12월 10일부터 20일간 이어졌다. 그들이 국토대장정에 오른 12월 10일은 달라이 라마가 노벨상을 수상한 날이기도 했다. 티베트와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순례단의 발걸음은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이어졌다.
대장정과 관련 잠양 씨는 󰡒한국 땅을 밟으면서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36년을 비롯해 한국전쟁· 분단·정신대할머니들·이산가족 등 슬픔으로 점철된 질곡의 한국역사를 느꼈다󰡓면서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이 땅이 티베트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됐고 그러자 언젠가는 티베트를 내 두 발로 밟고 서는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가슴속에 솟구쳤다󰡓고 설명했다.
잠양 부부가 바라는 것은 모든 티베트 난민들이 바라는 바와 마찬가지다. 일제강점을 겪은 끝에 결국 나라를 되찾은 한국처럼 티베트를 되찾는 것. 그것이 바로 잠양부부가 바라는 유일한 희망이다.
티베트 난민을 돕는 모임인 록빠는 향후 올 상반기에 야외 콘서트를 가질 예정이며 올 하반기에는 티베트 평화 기원을 위해󰡐Walk for Tibet(티베트를 위해 걷기)󰡑를 전개할 계획이다. 
잠양부부는 지난 31일 인도 다람살라로 다시 돌아갔다. 다람살라 생활에 대해 빼마 씨는 󰡒다람살라에 사는 티베트인들은 천국과 지옥이라는 단어가 익숙한 천주교 신자인 자신에게 󰡐자비󰡑라는 말을 가르쳐줬다󰡓면서 󰡒남편이 지어준 이름(빼마는 티베트어로 연꽃이라는 뜻)대로 한 송이의 연꽃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응오 기자 arche@jubul.co.kr 


빼마 씨가 본 다람살라 티베트 마을
󰡒자비심 일깨워준 다정한 이웃󰡓

우리가 결혼을 했을 때 마을 할머니들이 달걀 한 바구니와 가장 좋은 우유 한 통씩을 들고 우리를 반겼습니다. 하얀색 스카프를 목에 걸어주며 잘 살라는 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외국에서 돌아온 아들과 새 며느리를 축하하러 온 마을 사람들에게 시어머니는 버터 티를 내옵니다.
한국에 날씨는 어떻냐? 음식은 맛있냐? 소소한 이야기부터 처가집 가족 이야기까지 작은 시골 마을 할머니들의 질문에 남편은 열심히 대답을 했습니다. 옆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시는 시아버지는 내심 아들이 대견스러운 눈치입니다.
돌아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빈손으로 보내서는 안 되는 게 티베트 마을의 풍습이었습니다. 외국에서 가져온 작은 선물이라도 들려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옆집의 딸이 미국에서 왔을 때는 비누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미처 준비하지 못해 급히 버터와 세제를 사서 다음날 돌려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제임스가 동네 사람들 선물을 사야 한다고 했을 때  󰡒시댁 식구와 사촌형네 선물만 사면 됐지. 동네 사람들 것까지 챙겨야 하냐󰡓고 정색을 했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남편이 말한 선물은 큰 것이 아니라 그저 성의에 불과한 정말 작은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때때로 남편은 자기가 입던 오래된 옷을 누군가에게 주려고 해서 제게 면박을 당하고는 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그걸 선물로 줄 수가 있냐고, 요새 누가 남이 입던 오래된 옷을 입겠냐󰡓는 말을 덧붙였고, 그 때마다 남편은 도저히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아해 하곤 했습니다. 물론 나 역시 제임스를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나서 자란 제게는 계란 열두 개의 소박한 마음이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입지 못하는 옷을 기꺼이 남한테 줄 수 있는 마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부끄러워 할 필요 없이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저는 티베트 공동체에서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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